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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 Song(Old Ver.)
「그치지 않는군요」
「그치지 않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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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이 끝나고, 새싹이 움트는 시기도 지나고, 푸른 초목이 자라나는 봄이 깊어져왔다.
따스한 날이 계속되었다 싶으면 쌀쌀한 바람에 움츠러드는 날도 있다.
하지만 착실히 속옷은 얇아져간다.
그렇게 봄이 한 발짝 한 발짝 깊어져가는 것은 아키하에게는 기쁜 변화였다.
햇살은 따스하고 바람은 바람은 온후, 비조차 따스해서 더할 나위 없다.
오늘은 계속해서 비가 내리고 있다.
평소처럼 일찍 일어난 아키하는, 창 밖으로 막 돋아난 잎이 부슬 부슬 내리는 비에 젖고 있는 것을 지켜보았다.
오늘은 좀 추워질 것 같으니까요――라며, 언제나처럼 기분 좋아 보이는 코하쿠는 어제보다 얇은 천 한장을 더 보탠 옷을 준비했다.
오늘은 휴일이지만 이 상황에서 밖으로 나가는 건 무리일 것이다.
조금 낙심하면서 거실로 향한다.
비가 높다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줄기차게 들려오고 있다.
머리카락이 충분히 자란 봄, 아키하는 오랜만에 저택으로 돌아왔다.
무뚝뚝하지만 마음씨 좋은 친구, 애완동물처럼 찰싹 달라붙곤하지만 참견은 하지 않는 친구와의 생활은 즐거웠다.
하지만, 역시 제일 좋아하는 오빠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무엇보다도 강한 것이었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자신을 맞이해준 오빠의 팔 안에서 아키하는 무심코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제일 좋아하는 사람에게 안겨서, 아키하는 역시 돌아오길 잘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봄방학에 접어들자 아키하는 오랜만에 저택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오빠와의 밀회를 즐겼다.
눈이 핑핑 도는 듯한 2주간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날 무렵, 아키하는 역시 기숙사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오빠와 만나는 것은 즐겁다. 서로 사랑하는 시간은 안타까울 정도다.
하지만, 그것에 빠져서는 안 될거라고 생각했다.
조금만 오빠와 거리를 둘 수 있는 시간을 만들자.
그 대신 주말에는 저택으로 돌아와서 마음껏 사랑받는 것이다.
시키는 쓸쓸할 것 같았지만, 여동생의 의지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매 주말에는 반드시 시간을 비워서 여동생을 마음껏 사랑해 주었다.
오빠로서, 그리고 연인으로서.
황금 주간을 여행지에서 즐겁게 보낸 그들은, 다음 주말에도 잠깐 여행을 가자고 서로 이야기 했었다. 새싹이 돋아나는 후지산 기슭을 걷자고.
그런데 이 비가 그것에 찬물을 끼얹어 버렸다.
여행이 무산되었으므로 아키하의 아침은 평소대로다.
아침 식사를 한 후에는 우선 티 타임. 그 다음 오전은 집무 시간으로, 당주로서 결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서류를 코하쿠, 히스이와 셋이서 처리해 나간다.
그렇다고는 해도 복잡한 안건은 그때 그때 쿠가미네 토나미를 대동하여 아키하와 직접 처리하게끔 되어있다.
그러니까 미성년 여성 셋이서만 처리하는 안건은 오직 토오노 가 자체 가정과 관련있는 출납과, 기업에서 정기적으로 올라오는 요약 일람(summary) 종류였다.
그것들과 관련하여 하나 하나 결제, 또는 부전(附箋)을 달아 보류한다.
결제서류는 단순히 법률상의 요청에서부터 친권자의 서명이 필요한 경우에는 아리마가로,
일족으로서 중요한 동의가 필요한 경우에는 후견인인 쿠가미네 토나미에게로 송부된다.
보류된 안건은 각기 발송지로 되돌아간다.
이러한 일을 셋이서 오전 내내 처리하는 것이다.
라는 것은, 결제서류의 대부분이 되돌아가는 명목상의 친권자 아리마 케이코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고 있다는 것.
반쯤은 자신이 처리하면서 아키하로서도 감탄할 따름이었다. 그 정도로 처리해야 할 서류는 많다.
「대부분 저택 장부와 관련있는 거지? 대충 사인해버리면 돼지 않을까」
어느 틈엔가 일어나선 다과를 집어먹으며 속 편한 얼굴로 말하고 있는, 좋아하는 오빠가 있다.
아키하는 한숨을 쉬었다.
「하아, 좋은 아침입니다 오빠. 아침부터 잠 덜깬 듯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돈이 관련된 이야기라구요? 그렇게 적당히 처리할 리가 없잖아요」
「그치만, 토오노 가 정도의 부자라면 약간의 오차 쯤은 문제가 아니잖아?」
시키가 참견한 것은 일방적으로 돈 얘기를 우습게 보자는 것이 아니고,
좀 더 합리적으로 행동하면 어떨까, 하는 의도인 듯 하다.
「그 「약간의 오차」가 쌓이고 쌓여서 엄청난 금액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단순한 실수라면 몰라도 범죄 행위라면 어떨까요. 토오노 정도의 자산 규모라면, 최종적으로는 대규모 범죄로 이어지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대충 넘길 리가 없잖습니까――특히 우리 저택에는 요주의 인물이 있고 말이죠」
아키하의 시선이 그 "요주의 인물" 에게 향하자, 요주의 인물은 아하, 하고 웃으며 식은 땀을 흘리고 있는 것 같다.
「아- 알았어 알았어. 아키하 마음 가는대로 처리하면 돼」
시키가 웃으면서 이야기를 중단하자, 아키하는 더욱 더 화가 난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오빠의 솔직한 미소를 보고 있자니 더 이상 다그칠 마음이 사라져 버린다.
「아키하 님, 시키 씨는 분명 아키하 님을 걱정하시는 거라구요~」
한숨 돌릴 틈을 찾았는지, 찻잔이 든 손수레(wagon)을 밀어 온 요주의 인물 ――아니 코하쿠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끼어들었다.
히스이는 처리가 끝난 서류를 발송처 별로 정리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계~속 서류랑 씨름하고 있어서는 피곤하니까요. 자, 차 마시기로 해요. 오늘 처리해야 되는 건 그게 전부니까요」
「그래. 슬슬 피곤해졌어. 히스이, 이건 "보류"로 부탁해」
아키하는 계속 읽고 있던 서류에 뭔가를 적은 부전을 붙혀 "보류" 상자에 두었다.
그것도 히스이가 정리해버리자 아키하의 일은 끝이 났다.
「――그렇다해도 큰일이구나. 다음부터는 나도 도울게」
「마음은 감사합니다만, 오빠한테 맡겨두면 뭐든 척척 결정해버릴 것 같아 무섭군요.
코하쿠의 의도 그대로일 테죠」
「너무 심한 말인 것 같은데」
시키는 머리를 감싸쥐어 보였다.
「시키 씨, 아키하 님은 엄청 기쁘신데 애정 표현이 복잡한 것 뿐이에요~」
코하쿠가 웃으면서 지원을 해 준다.
정말 지원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조금 의문이긴 했지만.
「뭣- 코하쿠, 뭐가 애정표현이라는 겁니까!」
「네 네, 차 마십시다~」
코하쿠에게 휘둘리고서 차를 건네받은 아키하는 진심으로 꾸짖을 생각은 없었는지,
고분고분히 차를 받아들고 화내기를 그만두었다.
원래 아키하의 애정 표현은 삐뚤어져 있지만 양성(陽性)으로, 쾅하고 폭발하면 더 이상 오래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뭐, 시키 씨도 나름대로 대학에 들어가셔서 학습을 받으시면 분명 아키하 님을 도와주실 수 있게 될 거에요. 그 때까지 참고 기다려주세요~ 아키하 님」
「오빠가 저희들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시는 그런 사람이라면 좋겠는데 말이죠」
「하하, 하」
사실 대학에 진학할 의욕이 그다지 없는 시키는 그저 웃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라고는 해도, 정말로 아키하에게 도움 될 수 있다면야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휴일 점심 식사는 네 명이서 테이블을 둘러싼다.
간혹 아리히코나 아키하의 친구들이 더해지는 경우도 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오늘은 그런 예정도 없으므로, 시키를 제외한 세명이서 시키의 미래에 대해 -대단히 신랄한-고찰을 추가한 형국이 되었다. 시키의 입장에서 보자면 쓴 웃음 지을 수 밖에 없는 시간이었지만.
식사 후에는 어떻게 할까.
오늘은 계획대로라면 후지산 기슭을 걸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 예정이 깨졌으므로 시간이 많이 비어있었다.
「아키하 님, 가끔은 기분전환 차원에서 푹 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라고 말하는 히스이.
「그럴까. 이렇게 비가 와서야 밖으로 나가도 갈 곳이 없을 테고」
아키하도 그럴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럼, 난 나갔다 올게」
라고 말하는 시키.
「오빠는 어디 가시려구요? 쇼핑인가요?」
「쇼핑이랄 것까지야.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시간도 충분히 때울 수 있고 말야 」
「그런가요」
아키하는 일순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이 되었다.
「그럼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엣, 따라오는 거야?」
「저, 싫으신가요?」
조금 머뭇 머뭇하면서 눈을 치뜨고 시키를 올려다보는 아키하.
시키의 가슴이 쿵 하고 울렸다. 그 눈은, 시키 입장에서 보자면 반칙기술이다.
「아, 아니. 물론 싫지 않아. 하지만 대단한 곳을 돌아다니는 건 아닌데?」
「상관없어요. 오빠랑 함께라면」
「아키하 님, 나이스한 부끄러운 얼굴입니다~」
라고 하며, 코하쿠는 엄지를 세워보였다.
「코하쿠, 놀리지맛!」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진 테이블에서, 시키는 쓴 웃음을 지으며 아가씨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럼, 다녀올게요」
「다녀올게. 저택 잘 부탁해」
「네, 걱정마시고 잘 다녀오세요」
코하쿠와 히스이에게 배웅받은 뒤 시키와 아키하는 거리를 향해 걸어나갔다. 조금 큰 우산으로 함께 우산을 쓰면서.
날씨가 약간 쌀쌀하기 때문인지 아키하는 평상복인 붉은 원피스 위에 원피스와 같은 붉은색 자켓을 입고 있었다.
자신과는 약간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 시키는 조금 미안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오빠, 오늘은 어디로 갈 거에요?」
오빠의 팔에 팔짱을 끼며 어깨너머로 응석부리듯 묻는 아키하였다.
「그렇지. 우선 서점에 가고, 번화가를 돌아다니고, 그런 다음엔 슈퍼라도 들를까 생각하고 있어」
「오늘은 오빠의 일상을 엿볼 수 있겠네요」
서점에서는, 시키는 언제나 서서 잡지를 읽고 그런 다음에 신간, 문고 코너를 둘러본다.
하지만 아키하와 팔짱을 끼고 있는 상황에서는 서서 읽을 방법이 없다. 팔랑 팔랑 넘겨 보이는 정도다.
「오빠는 그런 종류의 책을 좋아하시나요」
시키가 손에 든 책을 보며 아키하는 흥미로운 표정이 되었다.
1년에 4번 발행되는 나이프 전문잡지였다.
「응, 딱히 쓰고 싶은 건 아니지만 보는 건 좋아해」
「흐응...」
실은 성년 전용 잡지도 서서 읽지만, 엄격한 아가씨가 옆에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그건 패스.
신간, 문고 코너를 둘러본다.
시키는 전부터 보고 싶었던 작가의 최신 작품을 앞에두고 상당히 고민했지만, 결국에는 사지 않았다.
「안 사시는 건가요?」
라고 하며, 시키가 하는 일에는 뭐든지 흥미진진한 아가씨.
「응, 솔직히 지금 바로 갖고 싶다고까진 생각하지 않으니까. 사고 싶은 다른 것도 있고」
「흐응...」
시키는 시선을 떨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오빠는, 책은 언제나 사가지고 돌아가시나요?」
「하아?」
질문의 의미를 알 수 없어 시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거야 갖고 싶다면 살 수밖에 없겠지만」
「아뇨, 어째서 저나 코하쿠들에게 말해주시지 않는가 해서요.
그런 책들이라면 대단한 게 아닌 한 얼마든지 사드릴 수 있는데」
「아- 응, 과연. 그런 방법이 있었나」
확실히,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면 구입하라는 말은 아키하에게도 사용인 쌍둥이 자매에게도 들어왔다.
「별로 사양하실 필요는 없어요. 어차피 매주, 저도 나름대로 구입하고 있으니까요」
「음, 그런가. 생각해 둘게」
태평스러운 시키의 미소에, 아키하는 맥이 탁 풀리면서도 쓴 웃음을 짓고 있는 것 같다.
「그러고보니 아키하는 매주 그렇게 책을 사는 거야?」
「네. 이래뵈도 책은 많이 읽는 편이에요. 매주 학교에 가거나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지루하니까요」
아아, 그런가. 하고 시키는 납득했다. 학교 기숙사에서도 읽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차 타고 올 때 서점에 들르는 거야? 아니면 학교에서 외출 할 수 있어?」
주말을 함께 보내는 동안 아키하가 외출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아뇨, 서점에서 보내줍니다」
「응? 그럼 어떻게 책을 골라?」
「책은, 제가 잘 아는 서점 주인 분께서 제 취향에 맞게 골라주십니다.
벌써 10년째 알고지낸 분이기 때문에 제 취향은 잘 알고 계세요.
잡지나 문예 도서, 이과 계열 도서 선택으로, 제 취향에서 벗어난 책을 보내주시는 일은 상당히 드뭅니다」
「서점 쪽에서 고르게 하는구나」
「네. 그 대신 제 취향을 이해할 때까지는, 취향에 맞지 않는 책에 관하여 여러가지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취향에 맞지 않는 그 책들도 포함하여 배송온 책은 반드시 구입했지만요. 그 보답인 셈이지요」
과연 부자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시키 같은 일반인과는 발상이 다르다.
결국, 시키는 잡지만을 사고 서점을 나왔다.
다시 함께 우산을 쓰며 번화가를 걸어가는 두 명이었다.
「크로스워드 퍼즐(십자말 풀이) 잡지입니까. 오빠답고, 대단히 오래 즐길 수 있을 것 같네요」
아키하가 감탄하고 있다고도, 놀리고 있다고도 할 수 없는 어조로 말했다.
「괜찮잖아. 머리를 쓰고, 게다가 시간도 때울 수 있으니 말이지」
「나쁘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오빠답게 성실하고 착실한 선택이라 생각해서요」
「그거, 칭찬받고 있는 걸까나」
조금 배가 고파지자, 시키가 제안한 것은 패스트 푸드 가게를 가는 것이었다.
「사람이 많네요」
예상했던대로 아키하는 와글와글 북적이는 가게 안을 눈을 깜빡이며 쳐다보고 있었다.
시키는 그런 아키하를 기대 가득찬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자, 한턱 낼 테니까 주문 해」
아키하는 카운터 앞에 서서 상냥하게 0엔 상품을 대접하는 점원과, 그 뒤에 있는 메뉴를 비교해 보고 있었다.
당황하고 또 당황하고 있다――시키는 무심코 터지는 웃음을 억지로 참았다.
「저, 저기――」
「어서오세요. 현재 트리플 치즈 버거 셋트가 이득이 됩니다만」
「엣, 에, 그러니까, 그건 어떤 상품입니까?」
「기간 한정 특별 메뉴로 더블 치즈 버거 가격과 같아 큰 이득이 됩니다만」
「그럼, 그럼 그걸 부탁――」
「감사합니다. 음료수는 무엇으로 드시겠습니까」
「홍차를――」
「아이스 티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거기에 시키가 끼어들어 자신의 주문과 함께 돈을 지불했다.
햄버거는 잠시 후 가져오겠다는 말을 듣고, 우선은 음료수와 포테이토 프라이를 테이블에 놓고 비어있는 자리를 차지했다.
「대단히 어수선군요. 놀랐습니다」
아키하는 정직하게 그렇게 말했다.
「그거야 아키하가 자주 가는 가게에 비하면 이런 업종은 *회전이 승부니까 말이지」
*신속해야 한다 그런 뜻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해도 점원 분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말씀하시는 게 놀랍습니다」
점원의 마침표 없는 듯한 빠른 말투에도 놀란 것 같다.
아키하는 아이스 티에 입을 대고나서, 예상대로 얼굴을 찡그렸다.
「왜 그래, 너무 달아?」
「아뇨, 단지 향기가 없을 뿐입니다. 홍차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괜찮아요」
약간 될대로 되라는 기색으로 말했다.
포테이토를 먹고는 그 느끼함에 질려버린 듯한 아키하를 관찰하고 있자니, 점원이 두 명 분의 햄버거를 가져다 주었다.
「――뭐죠, 이건....」
아키하는 자신 앞에 놓여진 트리플 치즈 버거를 보고 말문이 막혀있다.
절대 아키하의 고상한 입에는 들어가지 못 할 만큼, 당당한 높이를 보이고 있었다.
아키하에게는 더블 치즈 버거조차 무리일 것이다.
「스스로 부탁한 거지. 자, 사 줬으니까 먹도록 해」
시키가 일부러 차갑게 딱 잘라말하자, 아키하는 새파래졌다.
「그런 말씀을 하셔도, 먹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턱이 빠져버릴 거라구요――」
아키하가 울 듯한 표정이 되는 것을 보고 시키는 역시 너무했나, 하며 후회했다.
「알았어, 알았어. 그럼 내 치즈 버거랑 바꾸자. 이거라면 괜찮지?」
어차피 이렇게 되리라 생각해서 시키 쪽은 제일 작은 사이즈의 것을 부탁해 둔 것이다.
「네. 미안해요, 오빠」
「아, 아냐, 신경 쓰지마」
시키는 역시 울상을 지을 때까지 놀리는 건 너무 심했나, 하고 생각하면서도 평소 일상에 대해 작은 복수를 달성해서 약간 속이 후련하기도 했다.
「오빠, 알고 있었죠」
「미안, 미안. 쬐끔 사소한 장난을 쳤을 뿐이잖아」
가게를 나와서 다시 한 우산을 쓰고 서로 장난을 치며 걷고 있었다.
그 뒤, 시키가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묘하게 차가운 시선이 집중된 것을 눈치챘다.
아무래도, "저런 귀여운 아이를 괴롭혀"――라는 둥의 반감을 사버린 것 같다.
그 분위기에 시키 쪽이 견딜 수가 없어져서 햄버거를 담아 서둘러 가게를 나오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나오면 나온대로 이번에는 아키하가 아까의 일을 문제삼기 시작한다.
그렇다고는해도 우산 속 분위기가 살벌한 공기를 완화시키는 건지, 말다툼이라 해도 사소한 것이었다.
「이제 몰라요」
아키하는 홱 다른 쪽을 향해버린다.
한 우산을 쓰고, 팔짱을 낀 상태로 걷고 있기때문에 의미가 없지만.
시키는 게임 센터로 들어가서 아키하를 위해 크레인 게임으로 봉제인형을 집어 주었다.
그러자 아키하는 굉장히 기뻐하며, 아까까지 언짢았던 모습은 어딘가로 날아가버린 것 같았다.
「고마워요. 오빠한테서 선물을 받은 건 처음입니다」
별 것 아닌 악어 인형이지만 아키하는 정말로 소중한 보물인양 꼭 끌어안고 있다.
아, 그런가. 하고 시키는 깨달았다.
시키는 지금까지 계속 아키하에게서 뭔가를 받으며 살아왔다.
생활비라든가 하는 레벨이 아니라, 살아가는 의미도, 그리고 생명조차도.
그런데도 시키는 자신이, 아키하에게 뭔가를 해 준 일은 없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렇구나. 다음에 게임 센터에 들르면 또 꺼내와서 줄 테니까」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삼키면서, 시키는 상냥하게 웃었다.
「네. 기대하겠습니다」
아키하는 오빠가 갑자기 상냥해진 것을 이상히 여기면서도,
역시 기쁜 건지 인형을 꼭 끌어안은채로 오빠에게 달라붙어 길을 걸었다.
번화가를 배회하며 작은 가게를 연속해서 들어간다.
아키하가 지친 것 같으면 적당한 벤치에 앉아서 쉰다.
정말 별 것 아닌 산책인데, 아키하는 즐거운 것 같았다.
「이런 장소, 별로 걸은 적 없는 거야?」
「그렇지는 않습니다만....대개 목적이 있어 거리에 나오기때문에, 이런 식으로 목적없이 걷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대부분 코하쿠랑 함께였으니 제가 곤란할 일도 없었구요」
「그럼, 아까 햄버거 일도 사회공부구나」
「후후후, 그런 것으로 쳐 드릴게요」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 번화가에서 약간 떨어진 슈퍼였다.
살 생각도 없는데 신선 식품 코너를 배회하며, 판매하는 사람이 내미는 시식품을 맛 본다.
「뭔가 사지 않으면 죄의식이――」
라고 하는 아키하가 마음에 걸려 시키는 적당한 패트병과 봉지 라면을 몇 개인가 사서 슈퍼를 나왔다.
「언제나 사가시는 건가요?」
봉지 라면을 가리키며 아키하가 이상한 듯 물었다.
「응, 가끔 밤중에 배가 고플 때가 있어서. 코하쿠 씨에게 부탁하면 부엌 선반에 둬 주는데――」
「정말, 오빠. 그런 짓을 하셨습니까. 밤중에 방을 나와 돌아다니는 건 삼가해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코하쿠도 코하쿠입니다, 그런 식으로 오빠를 응석부리게 하니까 ――」
우왓, 긁어 부스럼이다.
시키는 당황하여 아키하를 달래면서 저택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비가 계속해서 부슬 부슬 내리는 도중, 저택 쪽 비탈길로 이어지는 길을 돌아간다.
간신히 어떻게 아키하를 달랜 시키는, 아키하의 손을 잡고 길을 걷고 있었다.
이 길을 걷을 때는 어떤 기억이 되살아나서, 그것이 시키의 표정을 어둡게 만든다.
아키하는 그것을 꽤 오래 전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니까, 오늘 이 시간에 물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
아키하는 걸음을 멈추고 오빠를 올려다보았다.
「응?」
「유미즈카 씨의 집은 이 근처지요」
「――아아」
시키는 아키하에게 옆 모습을 보인채로 언덕 저편을 향해 눈을 돌렸다.
멈춰선 시키에 아키하도 언덕으로 눈을 돌린다.
「그로부터 반년이 지났구나」
「네」
아키하는 뭔가 결심한 얼굴로 시키에 물었다.
「저기, 오빠. 오빠는 유미즈카 씨를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그래――」
시키는 납빛의, 그러나 어쩐지 이상하게 빛을 느끼게끔 하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모르겠어. 좋아했던 건지, 신경 쓰였던 건지, 아무래도 좋아했던 건지, 지금이 돼서도 모르겠어. 내가 유미즈카를 신경썼던 건 그 때가,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가 처음이었으니까」
시키는 문득 멍한 눈을 만들어 보였다.
「난 매정한 녀석이야. 유미즈카는 계속 나를 신경써 줬는데, 난 전혀 눈치채지 못 했어.
유미즈카가 그렇게나 생각해주고 있었는데, 난 조금도 생각해 줄 수 없었어」
시키는 아키하에게도 눈을 돌렸다.
「아키하, 너도 마찬가지지.
난 8년 전 너에게 생명을 나누어 받고 어떻게든 생명을 이어왔어.
넌 나를 위해 계속 괴로워했는데, 난 태평하게 지내고, 신경쓰지도 못 했어.
난 네게 빼앗기만 하고 네게 해 줄 수가 없었어.
유미즈카도 마찬가지야.
난 분명, 그런 차가운 마음을 타고났나 봐」
「아직도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아키하는 일부러 화난 듯이 말해보였다.
「오빠는, 아직도 그런 바보 같은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그러면 정말로 유미즈카 씨는 편히 잠들지 못 해요. 그런, 자신이 아무 것도 해 주지 않았다니요」
「하지만, 아키하――」
「아뇨, 듣고 싶지 않습니다」
아키하는 딱 잘라 말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건 오빠 덕분입니다.
오빠가 있었으니까 제가 살아올 수 있었던 겁니다.
있죠, 오빠. 인간에게 있어 가장 행복한 건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일이에요.
나, 오빠를 생각할 때가 제일 행복했습니다.
그 시간이 없다면 그 저택에서의 지루한 시간을 견디는 일 따윈 불가능했어요.
오빠는, 제게 살아갈 의미를 주었습니다. 분명 유미즈카 씨도 같을 거에요. 게다가――」
아키하는 시키에게 몸을 기대고서 더욱 더 열띠게 말을 했다.
「게다가, 오빠는 유미즈카 씨를 계속 생각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생전의 유미즈카 씨와 오빠는 인연이 희박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유미즈카 씨를 잃고나서 오빠는 분명하게 계속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미즈카 씨도 분명 보답받고 있을 거에요. 흡혈귀가 되어 고통스럽게 죽은 유미즈카 씨도, 오빠가 계속 생각해 주는 것으로 구원받고 있는 겁니다.
정말, 오빠는 그런 것도 모를 만큼 둔감하니까――――」
「――그런가」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오빠, 그런 괴로운 듯한 얼굴을 하지 말아주세요.
그런 얼굴을 보게되면 유미즈카 씨도 안심하고 천국에서 편히 쉬실 수 없을 테니까요」
시키는 그것을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아키하의 몸에 손을 돌려 꼭 껴안았다.
그리고 그 눈은 자신의 손으로 지워 없앤 클래스 메이트의 환상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저택 문을 빠져나가자 시키는 갑자기 뒤뜰로 걸음을 옮겼다.
저택을 돌아서 뒤뜰의 약간 깊숙한 곳으로 들어서자 아담한, 지어진지 얼마 안 된 정자가 세워져 있다.
바로 옆에는 작은 수면이 펼쳐지고 있다.
이 근방은 배수가 나쁜 탓에, 어느 틈엔가 물이 고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연못을 만드는 게 어때, 라는 제안으로 작은 연못을 만들고 정자를 세웠던 것이다.
「정원에 연못이 있다는 건 좋지?」
정자 벤치에 걸터앉아 비 내리는 수면을 바라보면서, 시키는 조금 자랑스럽게 말했다.
차라리 연못으로 만들어버리면 어때――라고 하며 제안한 사람이 누군가, 시키였기때문이다.
「차분한 분위기에요. 저, 혼자서 자주 연못을 바라봅니다」
그러고보니 아키하의 방에서는 이 연못이 잘 보일 것이다.
그렇구나, 하고 시키는 생각했다.
「그런데 말야, 오늘은 산에 갈 수 없었지만 다음 주에는 어딘가 호수로 놀러가지 않을래? 보트도 타고 말야」
「왠지, 『보트 전복으로 남매 익사』라는 신문의 표제어가 떠오르는군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아키하도 그리 싫지는 않은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말도 없이 빗방울이 조용하게 파문을 일으키는 수면을,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그치지 않는군요」
「그치지 않는구나」
계속해서 내리는 비에 쓴 웃음을 지으며, 이런 날이 있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는 두명이었다.
<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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